아카바* 2008. 11. 25. 09:21


      조건 없는 사랑
            

라 렌토(La lenteur),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 출신 작가지만, 그의 대표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라 렌토’ 같은 책들은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써서 유명해진 책들입니다.
이 책은 우리말로 ‘느림’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거기서 밀란 쿤데라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조건 없이 사랑받는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증거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네가 똑똑하기 때문에, 또 네가 선물을 사주기 때문에, 네가 외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설거지를 해주기 때문에 사랑한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실망한다. 그런 사랑은 뭔가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다.

그런 식의 사랑이 아닌 예컨대 이런 말들은 얼마나 듣기가 좋은가. ‘비록 네가 똑똑하지도, 정직하지도 않고, 비록 네가 거짓말쟁이고, 이기적이라도 난 널 너무나 사랑해.”

여러분은 소설에 나온 밀란 쿤데라의 글처럼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또 사랑할 수 있습니까? 네가 좀 못 생겼어도, 네가 앞날이 그다지 창창하지 않아도, 네가 돈이 많지 않더라도, 네가 나 보다 나이가 좀 많아도, 사랑할 수 있냔 말입니다.

꼭 같은 질문을 누가 제게 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아니군요. 난 아직 아무런 전제 조건 없는 사랑을 해 보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하질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못 할 것이란 말은 제 나이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여자와의 사랑은 폐업해야 될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그거야 다르지요.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시기를 놓치지 마십시오.

꼭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일은 고귀한 것입니다. 사랑이 조건에 의해 더하고 덜해지는 현상이 극심해진 사회는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까지 끊어놓는, 인간이 금수같이 되는 사회이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런 금수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짐승을 욕하진 마십시오. 짐승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니까요. 짐승 입장에서 보면 인간만큼 나쁜 놈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점에선 짐승들이 인간 보다 앞서 있지 않을까요.
몸짱도 얼짱도 구별하지 않는 동물 세계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인간 세계 보다 조금 느릴 뿐 평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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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세요? 하고 물어 올 때 그대는 뭐라고 대답하는가?
생떽쥐베리 식으로 하면, ‘창틀에 제라늄을 키우고 있고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겠지만,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십중팔구, 어디 사는 아무개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대는 아직도 그렇게 따분한 대답을 하고 있는가? 그런 따분한 대답을 가르치는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의 머리통을 쥐어박아 버려라.  
몸을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그대의 확신은 철석같은 믿음으로 스스로를 짝퉁 아닌 진품이라 여길 것이다. 몸짱이라는 평을 받으면 좋아하고, 몸꽝이라는 소릴 들으면 비관까지 해 가며 그대는 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길들어져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몸에 대해 타인이 내리는 판단에 따라 그대 마음이 태엽 감긴 인형처럼 좋았다가 싫었다가 춤을 춘다는 점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좋은 옷을 입고 있거나 장신구를 하고 있을 때 ‘그 옷 참 예쁘네’ 또는 ‘그 귀걸이 참 예쁘네’ 라는 칭찬을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몸뚱이에 달고 있는 장신구까지 마치 그것이 ‘자기’인양 착각하며 그대는 춤추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몸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지는 영어 단어에서도 나타난다. Body는 몸이라는 말이지만 누군가라는 뜻으로 쓸 때는 somebody, 모두는 everybody로, 아무도는 nobody로, 결국 body라는 단어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된다.

정말 우리는 Body에 한정되는 존재일까? 몸을 들여다보라. 그것이 내 것이라면 내가 마음먹는 대로 따라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몸이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늙기 싫다면 늙지 않고, 병들기 싫다면 병들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 몸은 그대가 마음먹는 대로 따라 주는가?
아니라면,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정말 그대 몸의 주인이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