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5. 15:27ㆍ▦ 마음의 쉼터/풍경이 있는 詩
손톱 끝에 봉숭아물
김소운
손톱에 뜬 초승달 속에 둥지 튼 그리움 한데, 살아서는 도저히 그대에게 갈 수 없어 소한 날 내린 눈에 골똘하다 그리움의 하중 깊어 나 그만 달 속에 풍덩 빠져버렸네 젖은 내 몸이 우네, 울고 있네. - ‘대구문학’ 2007년 봄호 - ....................................................................................................................................................................................
오래전 TV퀴즈쇼에서 한 젊은이가 부모님을 방청석에 모셔놓고 상금으로 부모님 해외여행 가는데 보태겠노라 호언까지 하고선 첫 단계에서 그만 낙마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문제의 문제는 ‘봉선화와 봉숭아는 같은 꽃인가?’하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다른 꽃이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사실 남들 다 아는데 나 혼자 모르거나 헷갈리는 것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 가운데도 잘못 알거나 확실히 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꽤 있지 싶다. 비슷한 것으로 반딧불과 개똥벌레, 미루나무와 사시나무도 그런데 그런 문제 앞에서 어물어물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보면 결코 망신이라고 얼굴 붉힐 것 까지는 없지 싶다.
다만 그 옛날 흔히 보았던 봉숭아물들이기에 얽힌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을 지금 사람들이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있다. 여름철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봉숭아물을 들이는 사람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봉숭아물은 매니큐어 같은 화려한 원색이 아니다. ‘손톱에 뜬 초승달’과 은은하게 어우러져 애절한 그리움을 덧씌운다. 그러나 손끝이 닿지 않는 그리움은 너무 깊고 무겁다. 이국에서 살다간 한 맺힌 궁녀의 전설처럼 시리다. 그래서 살금살금 미심쩍게 내렸던 첫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소한, 퍼부었던 ‘그리움의 하중 깊어’ 그만 혼절처럼 풍덩 빠진다.
봉숭아물들이기를 여름방학 숙제로 내준 선생님이 있다고 들었다. 선생님은 이런 간절함과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의 혼백을 하나씩 불러 가져보라는 의미 아니었을까? 이제 여름은 가고 추억은 잠든다. 추억은 다시 깨어날 것이나 그리움은 젖는다. 젖은 내 몸이 울 때 비로소 초승달 선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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