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에 닿아 / 이성선 가지에 잎 떨어지고 나서 빈산이 보인다 새가 날아가고 혼자 남은 가지가 오랜 여운에 흔들릴 때 이 흔들림에 닿은 내 몸에서도 잎이 떨어진다 무한 쪽으로 내가 열리고 빈곳이 더 크게 나를 껴안는다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 사이 고요한 산과 나 사이가 갑자기 ..
배를매며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자화상 한 점 부끄럼 없이 태양이 벌거벗은 몸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던 날 나는 대지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들판에서 용감하게 발돋움하는 생명의 약동이 춤추고 있음을 보았다. 자연의 향기가 피어나는 환상의 세계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깨끗한 영혼이 새롭게 ..
+ 풍경 소리 추녀 끝에 물고기 한 마리 죽었을까? 살았을까? 바람이 살짝 건드려 봅니다 땡그랑 땡그랑 물고기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맑고 고운 소리를 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죽은 물고기를 바람이 살려 놓고 갔습니다. (최새연·아동문학가)
내 마음 깊은 곳엔 나만이 찾아갈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쓸쓸할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내 마음 가려진 곳엔 나만이 소리없이 울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고독할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아, 이렇게 내 마음 숨은 곳엔 나만이 마음을 ..
해국이 핀 풍경 해 국 (海菊) /작자미상 누구를 기다리냐고 묻지 마오 이미 그대 오지 않을 줄 아오만 내 기다림 멈출 수 없음이오 짖무른 기다림에 뭍으로 가보려 했소 그러나 보석 같은 이들 나를 밀치는구료 내 자리는 이 곳 거센 파도 달려들어 날 주저 앉히려 해도 세찬 폭풍우 어깨 ..
- 김재진시인의 오후 한 시
하늘이시여.. 우련祐練신경희 하늘이시여, 우리 모두가 아픕니다. 오늘도, 우리는 기적을 기다립니다. 지켜주지 못하여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픈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기도의 소리 높아집니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끝내 지켜주지 못하여 미안하다 애 끓는 소리 들..
들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봄 오는 소리 함동수 언제부터인가 흔들리며 달그락거리는 소리 있었지 바스락거리는 속삭임 있었지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며 지나는 기척 밖으로 살짜기 손 내밀고 그대 잡을까 어느새 얼음 강물 푸르러 살며시 문 열고 손짓하는 물오르는 소리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한 스무날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우련祐練신경희 한 스무날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바리톤의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그대로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마음 덜컹거리거든 한 삼일 목놓아 울고 그러다 잠이 들고 다람쥐 소스락 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져 하늘을 ..
조용헌의 동양학강의 2 작가 조용헌 출판 랜덤하우스코리아 발매 2010.06.04 평점 리뷰보기 금강경을 읽을 때마다 눈이 가는 구절이 있다. 여시여시(如是如是) ‘그렇고 그렇다’ 혹은 ‘그러하고 그러하다’ 의 뜻풀이를 쓴다. 다른 사구게는 어려워서인지 눈에 들어 오지 않건만 여시여시..
혼자 가질수 없는 것들/문정희- 가장 아름다운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만드셨다 사방에 피어나는 저 나무들과 꽃들 사이 푸르게 솟아나는 웃음 같은 것 가장 소중한 것은 혼자 가질 수 없게 만드셨다 새로 건 달력 속에 숨 쉬는 처녀들 당신의 호명을 기다리는 좋은 언어들 가장 사랑스..
님이여, 나를 안개꽃이게 하소서 / 최옥 님이여, 한송이 어여쁜 꽃보다는 나를 안개꽃이게 하소서 천개의 눈을 가진 안개꽃의 잔잔한 눈망울을 닮아가게 하소서 하나밖에 보지 못하는 교만한 꽃들의 눈이 아닌 천개의 눈빛을 가진 안개꽃의 잔잔한 눈망울을 갖게 하소서 그래서 내 눈길 ..
1월 /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
별헤는 밤 / 윤동주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來日)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靑春)이 다하..
1917년 북간도(北間島) 출생. 용정(龍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거쳐 도일,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 재학 중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다 사상범으로 일경에 피체, 1944년 6월 2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용정에서 중학교에..
새해기도 1월에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그동안 쌓인 추한마음 모두 덮어 버리고 이제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2월에는 내 마음에 꿈이 싹트게 하소서. 하얀 백지에 내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그려지게 하소서. 3월에는 내 마음에 믿음이 찾아오게 하소서. 의심을 버리고 믿..
소라의 꿈 / 박우복 바다를 모두 마시고 그것도 모자란지 하늘을 마시려고 빈 가슴 드러내고 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