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대로 저런대로 부설거사의 팔죽시,

2014. 1. 24. 22:32▦ 마음의 쉼터/풍경이 있는 詩

 

 

 

조용헌의 동양학강의 2

작가
조용헌
출판
랜덤하우스코리아
발매
2010.06.04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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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을 읽을 때마다 눈이 가는 구절이 있다.

여시여시(如是如是) ‘그렇고 그렇다혹은 그러하고 그러하다의 뜻풀이를 쓴다.

다른 사구게는 어려워서인지 눈에 들어 오지 않건만 여시여시의 구절만은 늘 가슴에 와 닿는다.

살면서 애쓰고, 바라고, 노력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 구절을 읊조리면

마음이 놓이며 편안해진다. 그와 비슷한 감회를 주는 글이 부설거사의 팔죽시이다.

의상, 원효, 부설거사의 이야기들은 많이 회자되는 얘기들이라 읽을 때마다 재미있다.

부석사의 선묘각, 원효의 무애행, 부설 처의 전생인연과 남매이야기는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보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가르침의 방편으로 많이 전해지는 까닭에 자주 접하는 행운이 있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오늘은 우연히 읽게 된 부설거사의 팔죽시를 올린다..

 

팔죽시(八竹詩)

우리나라 불교 고승 가운데 세 명의 행보가 눈여겨볼만하다.

그 세 명이란 7세기에 활동하였던 의상, 원효, 부설이다.

의상과 원효는 해골바가지 물 먹은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흔히 부설거사로 불린다. 결혼하여 아들과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3인은 여자와 결혼 문제에 대하여 각기 대처 방식이 달랐다.

먼저 의상은 철저하게 여자를 멀리하는 청정비구의 삶이었다.

의상을 죽도록 사모했던 중국 처녀 선묘.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 속에 뛰어들어 용이 되었다.

죽어서 용이 된 선묘는 영주 부석사까지 따라와 의상을 지키는 신장이 되었다.

원효는 요석공주와 잠깐 살면서 아들 설총을 낳았다.

그렇지만 요석궁에서 결혼 생활을 계속하지는 않고 다시 승려 생활로 돌아갔다.

부설은 도반 스님들과 순례를 하던 중에 묘화라는 처녀의 간곡한 청혼을 받는다.

하도 간곡하게 청혼을 하는 바람에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결혼해서 아들과 딸을 낳은 뒤에도 계속 수행에 정진하여 도통하였다고 전해진다.

부설 자신뿐만 아니라 이후에 부인과 아들, 딸이 모두 도통하였다.

말하자면 패밀리 도통이다.

패밀리 도통은 세계 불교사에서 유일한 일이 아닐까.

부설 거사 일가족이 도통한 자리가 변산 월명암이다.

월명암에는 부설거사가 남긴 시가 전해 내려온다.

읽어볼 때마다 참 기막힌 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 제목은 팔죽시.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            차죽피죽화거죽 此竹彼竹化去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풍타지죽낭타죽 風打之竹浪打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          죽죽반반생차죽 粥粥飯飯生此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   시시비비간피죽 是是非非看彼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빈객접대가세죽 賓客接待家勢竹

시장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시정매매세월죽 市井賣買歲月竹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만사불여오심죽 萬事不如吾心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내네.            연연연세과연죽 然然然世過然竹

 

여기서 자는 우리말 대로라고 해석한다.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혼자서 읽어보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