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미술 (1)

2013. 2. 13. 12:02▦ 한국의 문화재/문화재 답사 자료

한국의 불교미술(1)

 

세계의 문화유산 석굴암 석불

 

담당교수:영남대학교 배영진교수

 

강의목표

 

불교미술의 전성기라고 할 수있는 통일신라시대 한국 불상의 변천과정과 흐름을

펼쳐봄으로써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알려진 석굴암 석불의 우수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 불상의 성립과발생

 

*Gautama Siddhartha(B.C563~483) 고타마싯타르타: 석가모니 (실존인물 석가라는 나라의 왕자 부인은 마야)

*원시소승불교(B.C.3세기~A.D 1세기)무불상 시대

*대승불교 미술 (A.D.1세기이후)불상의시대

 

 @불상의재료: 지불: 종이 /건칠불 :삼베

불상의 각부명칭

 

 

수인

모든 불보살의 깨달음과 서원을 손모양으로 나타낸 것을 수인(手印)이라고 한다. 
수인의 종류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 5인(항마촉지인, 선정인, 전법륜인, 시무외인,여원인), 아미타불의 구품인(九品印), 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 미륵불의 시무외인.여원인, 비로자나불의 지권인, 아미타 부처님의 구품인(九品印) 등이 있다.

  

 

◆삼국시대불상

 

백제부처의특징:부처에 미소가있다.

삼국시대부처특징: 나발이 없다.대좌에 옷주름이있다.

 

 

 * 연가7년명금동불입

 

이 불상은 1963년 7월 경남(慶南) 의녕군(宜寧郡) 대의면(大義面) 하촌리(下村里) 산(山) 40번지에 사는 강갑순(姜甲順)씨가 발견한 것이다. 출토지가 확실하고, 더욱이 고구려(高句麗)에 속하는 명기(銘記) 있는 불상이 남한(南韓)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광배(光背)에 일부 손상을 입었으나, 각명(刻明)한 수법이나 찬연한 금빛 및 조상명기(造像銘記)기 있는 점 등에서 고구려(高句麗) 불상의 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상(像)은 불신(佛身)·좌대(座臺)·광배(光背)를 같이 주성(鑄成)하였는데, 좌대는 바닥이 밖으로 넓어진 원통(圓筒) 위에 특색있는 연판(蓮瓣)을 두었고, 그 위에 원추형을 거꾸로 놓은 작은 족좌(足座)가 있어서 불신(佛身)을 받치고 있다.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肉계)가 있고, 보발(寶髮)은 나형(螺形)인데, 삼국불(三國佛)로서는 드문 유례(遺例)이다. 얼굴은 비교적 작은 편인데, 살이 빠져 길쭉한 가운데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두 귀는 타원(楕圓)의 판형(板形)이고, 바튼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은 앞으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팔을 수평으로 올려 아래로 손바닥을 보이는데, 새끼손가락 둘을 꼬부리고 있어 삼국기(三國期) 불상의 통식(通式)을 따르고 있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매우 두꺼워서 지체(肢體)는 거의 표현되지 않고 앞면에서 V자형이 되풀이되어 있다. 옷자락은 지느러미형으로 좌우로 활짝 벌어졌는데, 각법(刻法)이 날카롭고 힘차서, 북위(北魏) 이래의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불신에 붙여서 같이 주조(鑄造)된 광배는 주형(舟形)인데, 윗부분이 안으로 굽고 아래쪽은 차츰 좁아져서 발목에 이르고 있다. 표면에는 따로
두광(頭光)·신광(身光)을 표현하지 않고 몇 줄의 각선(刻線)으로 화염형(火焰形)을 음각하였는데, 뒷면에는 4행 47자의 명문(銘文)이 음각되어 있다.

발견 당시의 평가에서 일부 혼란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후 원상(原狀)조사에 힘을 썼으며, 광배 윗부분의 잘려진 흠집을 제외하고는 도금(鍍金)마저 완전히 남아 있는 희귀한 불상이고 조상(造像)양식에서 보여 주는 세련된 기법 또한 뛰어난 작품이다.

이 상(像)의 조성연대는 조상양식과 명문을 종합하여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 군수리출토 납석여래좌상

 

납석으로 만든 불상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불상은 아닙니다..

 

※기림사 성보박물관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납석제 불상이 둘이나 있습니다.(조성 시기는 조선시대)

 

* 삼화령삼존불

 

현재 경주박물관에 있슴

 

 

◆통일신라시대불상

 

통일신라시대 불상 특징: 미소가 사라지고 권위와 위엄이 있다.

 

* 백제와 고신라의 불교조각 전통 위에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및 인도 서역과의 문화교류로 불교미술의 전성기를 맞이함(구제적인성격)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일정한 양식이 확립

 

중대 신라시대(654~780. 태종 무열왕~혜공왕)

사천왕사 녹유신장상(679)

군위삼존불(7세기후반) 

석굴암 조성의 모태 "삼존석굴암"

주소 : 경북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산 516

지정번호 : 국보 제 109호

지정면적 : 불상 2.88m

시대 : 신라 소지왕 15년

소유자 : 국유

 

신라 소지왕 15년(493)에 극달화상이 창건했으며 석굴은 지상에서 20m 높이에 위치하고

굴 입구 높이는 4.25m, 굴 속 길이는 4.3m, 바닥은 평면이고, 네모 반듯한 형상으로

천장은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주위는 차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입니다. 

석굴 내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있고

본존불의 결가부좌한 모습과 깎은 머리, 얼굴모습은 풍만하며 거대하고 엄숙한 기품이 있습니다.

당초에 석굴 앞에 절이 있었으나 폐허가 되고 당시의 주춧돌만 남아 있어, 사찰 복원사업으로

1989년부터  선방, 산신각, 종무소, 법당, 소하천 등을 증개축 하였으며,

주위의 경관이 수려하여 관광지로도 유명합니다.

고구려에서 전해진 신라불교가 팔공산자락에서 꽃피워지고 신라왕도(王都) 경주로 전해져

결실을 맺었습니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이곳에서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루었고,

이 절벽허리 20m 높이에 남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니 삼존석굴이라 합니다.

신라의 불교 공인(법흥왕)전 핍박받던 시대에, 숨어서 오로지 불심(佛心)으로만 수도하던 곳으로서, 

8세기 중엽 건립된 경주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군위군청 문화관광 제공>

 

감산사 아미타불(719)

감산사석조아미타불입상 - 국보 82호



 

 

경상북도 월성군에 있는 감산사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왕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후 그는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아버지를 위해 아미타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두 불상을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으로 지정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석조아미타불입상은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체 비례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상의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의 세부표현도 세련되어 신라적인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체는 비교적 두꺼운 옷 속에 싸여 있어서 가슴의 두드러진 표현은 없지만, 당당하고 위엄이 넘쳐 부처님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안압지출토 아미타 삼존불 판불 (8세기)

 

사진은 금동판삼존불좌상 높이 27.0cm, 보물 1475호.(사진제공=국립경주박물관)

 

◆석굴암 석불(8세기중후반)

나발.낮은 육계. 건장하고 안정된자세.알맞은 신체비례

우견편단 .항마촉지인 .자연스런 옷주름 .위엄있는 얼굴 표정 .명확한 삼도 표현.

 

 

 

 

◆하대신라시대 :780-~935. 선덕왕 ~경순왕):모방과답습

 

불국사 비로자나불 아미타불(8세기후반)

 

국보26호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27호(불국사 금동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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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비로자나불(859)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보림사 비로자나불(865)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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