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3. 22:50ㆍ▦ 한국의 문화재/문화재 답사 자료
4.격조와 위엄의 미학, 궁중행사도(기록화)
조선시대의 왕실문화는 근래 많은 연구 성과가 쌓이면서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왕세자 책봉,왕실 혼례,왕실 어른의 생신,왕의즉위 기념식 등 궁중의 행사를 기념하여 그린 "궁중행사도" 는 조선왕실문화의 격조와 위엄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김득신의 작품
<환어행렬도> 왕의 행렬이 궁궐로 돌아오는 장면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자신이 만든 화성에서 치르고 다시 궁궐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행렬도이다.
이 행렬에는 무려 6000명 이상의 인원과 1000마리 이상의 말이 참가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행렬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시흥에 있던 행궁에서 하룻밤 머물기 위해 행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인데,
긴 행렬을 묘사하기 위해 화가는 지그재그로 꺾어 길을 묘사하고 있다.
흰 천막으로 감싼 가마가 혜경궁홍씨의 가마라고 한다.
가마 뒤로 빨강옷의 신하들의 2열종대로 따르고, 그 뒤에 흰말이 있다.
그 말이 정조가 탄 말인데, 안장만 있고, 그 뒤에 양산을 받친 신하들이 따르는데,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기록화에서 왕의 모습은 누구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왕은 감히(?)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록화에서 왕만 쏙 빠진 자리만 볼 수 있다. (다른 그림에서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정조가 화성으로 원행을 계획할 때, 긴 왕의 행렬에 많은 백성들이 일상을 잠시 중단하고 엎드려 왕에게 하례하는 것을 염려했단다.
하여 정조는 백성들이 절하지 않고 행렬을 자유롭게 지켜보도록 각 지방의 수령에게까지 알렸다고 한다.
따라서 행렬도의 백성들은 마치 퍼레이드 관람을 하듯 자유로이 있는 모습이다.
들판과 개울도 보이고, 행여 행렬을 놓칠 새라 손자의 손을 잡고 지팡이를 잡고 오는 노인의 모습도 보인다.
서거나 앉거나 혹은 춤을 추거나, 각각 편안한 백성의 모습...
놀라운 것은, 김득신이 똑같은 사람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데도,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똑같은 말을 찾기도 어렵다.
김득신이 완벽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한강주교환어도> 노량진 배다리 건너는 장면
병풍의 한 폭은 이 배다리 그림이 차지하고 있다.
한강을 건너기 위해 36척의 배를 연결하여 배다리를 만들었는데, 지금의 노량진 부근이라고 한다.
이 배 역시 소요되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정조가 정약용에게 설계를 맡겼고 몇차례 수정을 했다고 한다.
이 행사가 끝나고 정조는 배다리에 참여했던 배주인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생업을 포기하고 동원된 백성들의 고충을 알았기 때문에 내린 조치라고 하니, 참 따뜻한 왕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그림에서도 배의 깃발, 모양, 뭐 하나 같은 것이 없게 그려져 있다.
닻줄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다르게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백성 한사람 한사람을 귀이 여기던 정조시절에는
화원들도 통일된 화면을 만들되, 세세한 차이들을 최대한 인정하려 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사계풍속도 8곡병>
김득신의 풍속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섬세하게 일상을 포착하는 그의 능력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풍속도는 그 결정본 같은 대작인데, 한폭 한폭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의 풍속화첩에 있었던 한 장면이 보이기도 하고 또 재미난 이야기의 긴장감 같은 것도 있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가야금을 타는 기생을 데리고 풍류를 즐기는 양반들, 그 아래로 함지박에 새참일 이고 일터로 향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이나,
시끄러운 선창가 부근에서 한가로이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모습이나,
타작을 하는 일꾼들을 보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양반의 모습이나...
천천히 들여다 볼수록 이야기가 솟아나는 작품이다.
<여동빈도>
검술도인 여동빈을 그린 그림인데, 멋지게 휘날리는 옷자락을 그린 부드러운 선이 눈길을 끈다.
여동빈은 김홍도의 신선 그림에서도 키가 크고 두건을 두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함께 있는 동자들이 생황과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이라 흐르는 듯한 옷자락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
<종리선인도>
여동빈의 스승인 종리권을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종리권은 연금술사로 알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표주박과 파초선을 들고 있다.
쌍검을 지고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를 걷고 있는데, 신선의 모습이 김홍도를 닮았다면, 이 물결은 정선의 그림을 닮아 있는 듯하다.
우측의 화제에는 추사 김정희의 이름이 보인다.
"푸른 눈, 불룩한 배, 이 어찌 나의 참모습인가, 나를 보고자 하면 이 호리병의 연기를 보라"
김득신의 신선 그림은 김득신의 또다른 면모를 보는 것 같아서 흥미롭고 즐거운 감상이었다.
작품 및 장면 설명 (오른쪽으로 부터)
제 4 폭: 신하들이 모여 진하례를 올리는 장면으로 추정.
제 5, 6 폭: 왕과 신하들이 모여 잔치를 하는 장면으로 추정.
제7, 8, 9 폭: 만경전에서의 왕비를 비롯한 여성들이 모여 내진찬, 야진찬, 회작을 묘사한 장면과
특히 제
9폭에는 진찬연의 최고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향악정재 중 하나인 선유락이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제8폭 중간쯤을 보면 배 주위를 둘러싸고 돌아가며, 무용을 하는 장면)
- 대한제국의 황제로써 개최한 특별한 진찬연 -
-대한제국의 문화유산 -
그림 자체의 퀄리티는 다소 떨어지는 점이 있기는 하나, 보관상태는 매우 완벽한 상태이다.
진찬도는 대병, 중병, 소병으로 그 급을 나누어 여러점을 제작하여, 황실 직계 가족과 고위 관료들에게
하사품으로 나누어 주었다.
위 진찬도는 각폭이 가로 56cm, 세로 163cm 로써 황실 직계 가족들이 나누어 가졌던 대병에 속하는 작품으로
추정된다. 위
작품은 지금까지 공개된 진찬도들과는 달리 중국식 연호를 사용해오다가 중국의 속국으로 부터 벗어난대한제국의 순수 우리연호인 광무연호를 사용한 최초의 진찬도이다.
또한 다른 진찬도 들에서는 볼 수 없는 대한제국의 신예 제복 및 신식 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등장하고 있으며,
본 진찬도는 타 진찬도들과는 달리 10폭의 각각 다른 장면이 연결폭이 아닌 전체가 각폭으로 구성되어 있어
한폭씩마다 각 장면을 묘사해야 했으므로 다른 진찬들과는 달리 궁의 형태나 그 규모를 함축적으로 묘사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로인해 각 장면의 내용이 다른 진찬도들보다 더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대왕대비의 진찬도들과는 달리 위 진찬도는 왕의 직계가족의 진찬연이 아닌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과
만오순 생일, 51세에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기 위한 진연을 기록으로 남긴 궁중행사도라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할 수 있겠다.
(봉수당 진찬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다른 진찬도에서는 행사 시작 후의 잔치 장면들만이 묘사되어 있는 반면,
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등을 기념하는 진찬도는 제 1, 2, 3폭의 장면은 신하들이 행사에 앞서 행사를 준비하고 논하며, 일종의 예행식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는 점이 지금까지 공개된 진찬도와는 달리 또다른 진찬도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어서, 진찬도를 연구하는데 있어 역사적 자료로써의 특별한 가치와 희소성에 있어서도 다른 진찬도들과는 비교 할 수 없는 특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과 학생들에게 공개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우리 궁중행사도를 이해하고 학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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