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꽃 / 사윤수
2013. 7. 20. 11:00ㆍ▦ 마음의 쉼터/풍경이 있는 詩
비꽃 / 사윤수
폭우는 허공에서 땅 쪽으로 격렬히 꽃피우는 방식이다. 나는 비의 뿌리와 이파리를 본 적이
없다. 일체가 투명한 줄기들, 야위어 야위어 쏟아진다. 빗줄기는 현악기를 닮았으나 타악기
기질을 가진 수생식물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비에겐 나비가 아니라 영혼이 깨지는 순간이 필
요한 것. 두두두두두두 타닥타닥타닥타닥타닥 끊임없이 현이 끊어지는 소리, 불꽃이 메마른
가지를 거세게 태울 때의 비명이 거기서 들린다. 꽃무릇의 핏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뺐
다고 치자. 그게 백혈병을 앓는 군락지처럼 줄기차게 거꾸로 드리우는 것이 폭우다. 추락의
끝에서 단 한 순간 피고 지는 비꽃. 낮게 낮게 낱낱이 소멸하는 비의 꽃잎들,
비꽃 한 아름 꺾어 화병에 꽂으려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시와 경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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