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2012. 7. 14. 00:11▦ 마음의 쉼터/풍경이 있는 詩

 

 

 

 

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시집 <인류의 盲點에서> (문학사상사, 1998)

............................................................

 

 세상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사나운 짐승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악한 사람들도 많지만 내가 가장 악한 사람일 수도 있고요. 세상에 이중인격자를 많이 보지만 내가 바로 그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늘 성찰하지 않으면 언제 그렇게 돌변할지도 모릅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보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인간입니다.

 

 바르게 말하면 호랑이와 승냥이 악어 따위가 사나워서 철책 안에다 가두어 두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못된 탐욕 때문에 그들이 갇혀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철창 밖의 우리 인간들이 ‘가장 사나운 짐승’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고요. 인간의 이기와 욕심에 무수한 생명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고 그 죽음조차 생명에 대한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잔인함이 깃들어 있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게 어디 동물에만 해당되겠습니까.

 

 맹수인 사자도 자신을 위협하거나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할 때가 아니면 사냥에 나서지 않습니다. 동물은 자기 배가 채워지면 더 이상 다른 동물을 해치치 않지요. 그런데 인간은 어떻습니까. 가장 이성적인 존재임을 자처하면서 때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사납고 무서운 존재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영혼에 심어 놓으신 선한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곧장 사자나 호랑이 같은 짐승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사납고 무서운 맹수로 전락해 버립니다. 그래서 히틀러나 피노체트, 이디아민이나 폴 포트 같은 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이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인간의 영혼에 양심이 떠나가고 악신이 들면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나중엔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마비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지난 주 호놀룰루의 그 동물원으로 가서 ‘가장 사나운 짐승’을 볼까말까 고민하다가, 퍼뜩 무서운 건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보다는 더 고약한 짐승 하나가 생각나서 슬그머니 포기먹고 말았습니다. 

 

 

권순진